메뉴 건너뛰기

디트로이트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 가톨릭교회

St Norbert.GIF

성 노르베르토, 주교


독일 산튼(Xanten)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 노르베르투스(Norbertus, 또는 노르베르토)는 하인리히 5세 황제의 궁전에서 하사품을 관리하는 차부제로 지내며 물려받은 많은 재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예식에 참석하고자 말을 타고 가다가 번개를 맞아 땅에 떨어졌다. 얼마 후 의식이 회복되자 방탕했던 지난 생활에 대해 깊이 통회하며 "주님, 저로 하여금 무엇을 하길 원하십니까?" 하고 옛날의 사도 바오로(Paulus)처럼 주님께 여쭈어 보았다. "악을 피하고 선을 행하라"는 음성이 들리는 것 같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그는 쾰른 근처 지그부르크의 한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단식으로 시간을 보냈었다. 결국 주님의 뜻을 확신한 그는 쾰른 시로 나와 사제 서품을 준비하고 1115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 후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전에 있던 곳으로 돌아왔으나 환영받지 못하였다. 그는 과거의 죄의 보속으로 이러한 모욕과 냉대를 참으며 그리스도의 고난을 묵상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 후 그는 주임 사제직을 사임하고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보속의 길을 떠났다. 그가 북부 프랑스를 다니며 주님의 말씀을 설교한 것이 큰 효과를 내게 되어 그는 매우 유명한 설교가로 변신하였다. 이윽고 포세스(Fosses)의 성 후고(Hugo, 2월 10일)가 동반자가 됨으로써 그의 능력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1120년 1월 25일 그는 13명의 동료들과 함께 프레몽트레(Premontre)에서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율수 수도회를 개혁하여 새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 수효는 급격히 불어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소위 '프레몽트레 수도회'이다. 그는 생전에 8개의 대수도원과 2곳의 수도원을 세웠고, 교황 호노리우스 2세(Honorius II)로부터 1125년에 공식 인가를 받았다. 그 후 테오발드(Theobald) 백작이 입회를 요청하자 그는 입회를 거절하고 세상에서 수도회의 규칙을 따라 살도록 제3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그는 독일에 갔다가 황제와 교황 사절의 간청에 굴복하여 마그데부르크의 대주교가 될 것을 승낙하였다. 그 교구에는 개혁할 일, 정리할 일들이 태산 같았다. 그가 임지에 갔을 때 주교관의 문지기는 그의 너무나 남루한 모습을 보고 거지로 착각하여 주교관으로 들여보내지 않았다는 일화도 있다. 새 주교와 그의 개혁 정책에 반감을 갖게 된 이들도 많아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방해하며 심지어 그를 처치해 버리려고도 하였다. 그러나 그의 덕행과 온화하고 용맹한 마음은 모든 장애를 극복하였다.

1132년 그는 황제 대관식에 참석하고자 로마에 갔다가 중병에 걸려 4개월 간 병상에 눕게 되었으나 그 후 교구로 돌아와 2년 간 직무를 수행하다가 1134년 54세로 선종하였다. 그는 캉브레(Cambrai)에서 이단과 싸우는 친구 성 발트만(Waltman, 4월 11일)을 도와주었으며, 성체 현존에 관한 이단을 배격하는데 공로가 컸다. 그는 158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3세(Gregori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고, 1672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는 전세계 교회에서 그의 축일을 지내도록 하였다. [6월 6일]<굿뉴스>


Saint Norbert, Bishop

Optional Memorial

St. Norbert was born in 1080 A.D. at Xanten in the Rhineland. Raised by affluent parents, Norbert lived a comfortable life focused on worldly pursuits and pleasure. Initially attracted to the posts’ influence and income, Norbert accepted a canonry in the church of St. Victor in Xanten, was ordained a subdeacon, and appointed church almoner in Henry V’s royal court. A near-fatal horse riding accident changed Norbert’s focus. He renounced his court appointment, made an extended retreat, and was ordained a priest in 1115. He gave away his wealth and became a wandering preacher. He founded a community of canons regular at a place called Premontré on land given him by the Bishop of Laon. From that community developed the Premonstratensian Order, which includes houses for both men and women. Later in life, he was appointed Archbishop of Magdeburg and finally chancellor and advisor to Emperor Lothair II. [1]

Written by Sarah Ciotti
[1] Catholicpedia: The Original Catholic Encyclopedia (1917) for iPhone, iPad, and iPod Touch. s.v. “St. Norbert.” 
Note: Optional Memorials and Commemorations are optional celebrations and, at present, we do not include content specific to these special days. This “About Today” is provided so that you can celebrate this Saint as you worship Christ.
<http://divineoffice.org/about-06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