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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성 김대건 안드레아 한인 가톨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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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Lee Youtube 01.JPG

시작기도 바치고 시작하겠습니다. *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사랑과 은총을 한결같이 베풀어 주시는 하느님,

45년전 이역만리 미국 디트로이트에 본당공동체 설립을 허락하시고 복음을 선포하게 하는 영광을 허락해 주심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저희는 지나온 45년을 되돌아 보고 깊이 반성하며,

거듭 당신의 뜻에 순종하고 쇄신되길 바라나이다.

저희가 매일의 생활속에서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또한 주님 안에서 저희 공동체가 항상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찬미예수님, 반갑습니다.

금년은 우리본당이 설립된지   45주년 되는 해 입니다. 45년 참 긴 세월입니다. 하루 하루로 계산하면  16425 , 시간으로 따지면 약 40만 시간입니다. 45년전에는  주보를 만들 때 등사기를 사용해서 롤러에 잉크를 묻히고 한장, 한장 등사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여기 대나무가 있습니다. 어떤 대나무는 20미터 정도  높이까지  자란다고 하는데,  대나무가 똑바로 자라는 것은 중간중간에  매듭을 짓고 자라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나 조직도 앞만 보고  달려가기보다는 중간 중간 뒤돌아보고 점검해야 제대로 발전한다고 합니다. 

우리본당은 그동안 중간 중간 매듭을 지었왔습니다. 10주년, 15주년, 25주년, 40주년기념식을 했었습니다. 금년 45주년은 코로나때문에 간단하게 기념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본당은 지난 45년간 다섯개의 매듭을 맺었습니다. 이 다섯개의  크고 작은 매듭을 풀어 헤치면서 우리성당의  역사를 회고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첫번째  매듭을 풀어 보겠습니다.

70년대 이민자가 늘어나면서 이곳 디트로이트에도 많은

한인들이 이민오면서 197561일 수원교구 손태섭 마르코 신부님을 모시고  디트로이트 한인 성당이 설립됐습니다.   제가 1977년 워싱톤디씨에서 이곳에 이사한후 처음 참석했던 성아가다 소성당에서 30명정도의 신자들이 모여  미사드리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현재 북미지역에  한인천주교회가 약 147개가 있는중에 800명 이상 신자들이 있는 성당은 38개 밖에 안됩니다. 100명 남짓 신자들이 있는 본당도 25개나 있습니다. 우리 성당은 약 신자수  814명이 등록이 돼있습니다. 가구수는 320여 가구입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초대  손 마르코 신부님이 3년동안 우리 본당을 위해서 고생을 많이 하셨습니다.  재정이 어려웠던 우리 본당을 위해서 성 아가다 본당에서 숙식을 제공받는 대신에 성아가다 본당의 새벽미사, 병원사목, 고해성사등  여러가지 일을 하셨다고 합니다.  

1978년에 제 2대 본당신부님으로  수원교구에서 삼십대 후반의 하재별 미카엘신부님이 부임하셔셔, 새 사목회를 구성하시고 사목회칙을 만들고 새 구역을 편성하고, 캐나다 런던 천주교회와 교환사목을 하는등 활동적이셨고

셋방살이 하는 틈에도 성전건립기금  7만불 모금도 하셨지만, 교구와의 소통이 잘 안돼서 4년임기를 못 채우시고 일찍 본당을 떠나셔셔 약 8개월동안 신부님 없이 지내느라 당시 회장단이 매주일 신부님을 모셔오느라 정말 고생이 많았습니다.

다행이 여름방학 3개월동안 로마에서 영성신학으로 유학중이던 대전교구의 박재만 다대오 신부님이 오셔셔 사목활동을 해주셨습니다.  디트로이트 신자들이 신부님을 내보냈다고소문이 나서 수원교구에서는 후임신부가 다시는 오지 않았습니다.

신자들이 고생했지만, 얻은 교훈은  신부님이 얼마나 귀중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고, 역지사지  할 줄 아는  마음씨를  갖는 계기가 됐습니다.

드디어  198210  마산교구의 김차규 필립보신부님이 부임하셔셔, 각종 신심단체를  설립하셨고 , 성령세미나, 부부주말피정인  ME에 주력하셨고,  재임당시 부부 43쌍이 ME  다녀 왔습니다.

교회 앞에 사제관겸 회관을 구입해서 우선 신부님이 거주할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전임 회장 3분에게 성체분배권 수여하시고, 세기노공소, 앤아보 공소설립하셨고,  본당설립 10주년 기념식때 쇼카 대주교님 오셨을때,  우리교회의 어려운 사정을 대교구장님께 직접으로 알리는 기회로 이용했고, 재임당시 성전건립위원회에서는  $33만불 모금을 했습니다.  초대 손태섭신부님, 2대 하재별신부님, 3대 김차규 신부님 , 사목위원, 신자들이 10년동안 우리본당 초창기 반듯한 초석을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매듭을 풀어 보겠습니다.

1986년에는 제 4대 본당신부로 김성길 아오스딩 신부님이 부임하셔셔, 특히 부부 주말피정 (ME)을 더욱  활성화를 시키시고 우리 본당 자체에서 ME 행사를 갖기도

했습니다. 1989년 교황님이 디트로이트를 방문하셨는데 실버돔에 10만명이 모인 장소에서 6개국 언어로 기도하는데 당시 앤더슨 주교님의 배려로 우리 본당에서 참석도 하고 한국말로 기도도 드리고 우리신자가 교황님으로 부터 직접 영성체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디트로이트 대교구에는 약 300여개 교회가 있었습니다. 아직 교회가 아니었든 한인공동체 로서는 큰 혜택이었다고 봅니다.

이러던중 1989년에 디트로이트 대교구에서는 운영난으로 20여개의 교회를 폐쇄를 결정했었는데, 그중의 하나인  디트로이트 접경지역에 있는 성 유진성당을 69만불에 사라고 교구에서 offer 가 들어와서 갖고있던 $33만불 다운페이하고 살려고 했었는데 당시 김성길신부님이 교구에서 무상으로 주는 것을 알아보라고 해서 당시  회장단이 교구와 협상하던중에 대교구에서 198979일 무상으로 성유진 성당을 받게 된것이죠.

사실 그냥 얻은 것이 아니라 그동안 계속 대교구 행사에도 자주 참석하고, 도넨숀등도 하고 대교구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 해왔던 결과라고 봅니다.   

 

1990년에는 제 5대 강윤철 요한보스코 본당신부님이 부임하셔서 행정체계를 바로 세우시고

여기서 1시간 반정도 걸려서 가면 바다처럼 넒은 호수가 옆에 있는  캠프장에서 23일간의 성막생활을 실시해서 서로 친교하고 마음을 나누는 좋은 시간을 갖였습니다. 구호도 서로 마음을 열자는 에파타였습니다.

15주년 기념식도 하고 김대건 신부님 동상 축성도 하시고나서 ,강윤철 신부님이 이스라엘에 유학차 2년만에 떠나시고 잠시 후임신부님 오실때까지, 시카고에서 공부하시던 전임 김성길 신부님이 6개월간 사목을 해주시고  아가페라는 구호를 갖고 제 2회 성막생활도 했습니다.

세번째 매듭은  25주년 때 지은  큰 매듭이였는데 풀어 보겠습니다. 새 성전을 어떤 과정으로 완공하게 됐는가의 과정입니다.

19928월 제 6대 허철수 미카엘 신부님이 부임했습니다.

무상으로 받은 성 유진성당은 우범지역에 있어서 각종 도난 사건이  많았고, 사제관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가    주로 자매님 50명정도 참여한 수요기도회때 19932, 5인조  무장 강도가 침입해서 금품을 강탈해가는  강도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강도가 놀래서 총을 쏘긴 했지만 다행이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현장을 목격한 신부님이 입원하셨고, 퇴원후에는 사목위원들이 한달간 매일저녁 사제관에서 장총을 들고 사제관을 보초서기도 했습니다. 이것들이 기폭제가 되서 새성전을 지어서 이사가자는 신자들의 의견이 우세해서  다수결로 새성전건립을  결의하고 대교구청에서 새성전건립 허가를 받았습니다. 정식으로 모금활동이 시작돼고 많은 신자들이 협조했고, 특히 태극마을 할머니들이 손수 농사지은 채소와 김치를 팔고, 여러분이 미용재능봉사도 하고, 대건회에서는 빈 깡통 빈 병을 수집해 팔고 , Garage Sale,  모금 골프대회등을 통해서 건축기금을 모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모금기간이 점점 늘어나자 반대하는 신자들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허철수 신부님은1996519일 기공식을 끝내시고 사흘만에 귀국하시게 되었습니다. 재임기간에 Detroit 에서 서쪽으로  3 시간 걸리는 Grand Rapids에 공소를 설립했고.  꾸르실료 교육에 힘쓰셔셔  재임기간동안 40명을 꾸르실리스타를 배출했습니다. “겸손해지라구호를 갖고  3, 4차 성막생활도 했습니다.

우리본당은 하느님이 역사하시는 본당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유는

첫째, 5인조 무장강도가 침입했는데도 아무런 인명피해가 없었고

 둘째, 처음에 대교구에서 우리에게 준 대지는 일년에 한번씩 picnic 때나 가는 Kensington Park 근처였는데 당시 앤더슨 주교님이 허철수 신부님의 우리 교우들에게는 너무 멀으니 새로운 부지를 보게 해달라는 요청을 받아드려서, 현재의 화밍톤의 노른자 부지를 얻게된것이고,

 세번째는 모금도중에 대교구사정으로 2년간 전교회에

일체의 모금금지령을 내렸는데 당시 앤더슨 주교님이 힘 써주셔셔 한인천주교회만 예외 조치를 내려서 모금을 지속할수 있게 됬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치 않았으면 모금이 힘들었다고 생각됩니다.

 19965월 제 7대 이형수 블라시오 신부님이 부임했습니다.

이형수 신부님은 외적성장도 필요하지만 내적성장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셔셔 월례피정, 성서공부, 소공동체 모임, 생활성서반, MBTI, 메일미사등 신자들이 미쳐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모든 교육에 심혈을 기울셨습니다. 청소년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보여주셔셔 청소년 활동이 활성화 됐었습니다.

공사기간이 늘어나면서 추가경비가 들어 공사비는 올라가고 130가구가 감당하기에는 벅찾지만 본당신부님, 성전건립위원, 사목위원들 모든 공동체 형제 자매님들이 금전과 시간, 기도와 희생을 바쳐서 처음에는 엄두도 낼수 없었던 주일학교 교실 5, 사제관, 대성전 , 기공식이후 16개월만에 199711월 총 공사비 335달러가 소요된 아름다운 새 성전을 완성하였습니다. 교구에서 백 십만불 (110만불)을 빌리고 7년만에 모두 완납하는 기적을 낳았습니다.

루가 복음 1, 37절에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구절이 생각나는 시기였습니다.

성당을 완공하자마자, 내적성장의 일환으로 19985월에는 5일간 세계적으로 유명한 치유 예절가 팀인 매케나 수녀님과 케빈 스캘런 신부님을 모시고 말씀과 치유의 시간에는 외국신자,환자 포함 연인원 5천명의 신자들이  참석해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20006월에는 본당 설립 25주년 기념식을 마이다 추기경님과 박정일 주교님을 모시고 거행했고, 이해 우리한글학교도 개강하고, 새로운 김대건 성인 동상도 봉헌 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4번째 매듭을 풀어보겠습니다.

새 성전짓고나서 부터 40주년 기념때 까지 이야기 입니다.

2001년 제 8대 백남국 요한 신부님이 부임하셨는데. 백남국 신부님 께서는 우리 신자들의 내적성장에도 힘쓰셨지만 성전건립하는 동안 소외된 신자들을 끌어드리는데 노력을 하셔셔 우선 아침 8시 미사를 개설해서 성전건립과정에서 상처받고, 소외됐던 신자들이 새 성전에 아침 8시 미사에 나올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습니다. 친교실이 적어서, 친교실 증축을 위해 140만불 계획을 하고 70만불을 약정받았지만 교구사정으로 대출이 안돼서 교실만 5개 짓기로  결정하였으며 본당 생긴이래 처음으로 이영애 유지니아 수녀님 모시게 됐고,  백신부님은  매주 훌륭한 강론으로 신자 수가 늘어나고 헌금도 늘어나서 교구청으로 융자받은 돈을 만기보다 일찍 갚을 수 있었습니다.

 

20057월에 임효진 야고보 신부님이 부임하십니다.

신앙의 내실을 다지고 봉사와 증거의 삶을 살아야 된다고 강조하시고 성서  읽고 쓰기운동으로 성서 필사가 실행됐고, 우리신자들의 미사에 임하는 우리들의 자세나 올바른 태도에 대해 많이 교육을 해주셨습니다.

처음으로 파밍턴 지역구 30여개 대표를 우리 본당에 초청해서 지역구 회의도 했습니다. 

20073월 본당에서 정식으로 한국순교복자회 수녀회에서 두 분의 수녀님을 모셔셔 주일학교 교육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으셨다. 20076월에는 새 교실 5개를 증축했고, 20094월에는 아름다운 대리석 성모상을 봉헌 했습니다.

20098월 제 10대 전동혁 베드로 신부님이 부임해서. 사목방침을 신앙의 본질에 충실하고 친교의 교회가 되고 세상과 함께하는 교회로 정하시고 임기내내 열심히 하셨습니다. 새성전을 갖고나서  교구청과의 소홀했던 관계를 개선하는 의미에서 매년 교구장이 주최하는 신학교 모금활동에도 신자들을 독려해서 참석하셨고 떠나시기 전에 성전건립과 교실증축에 공헌한 신자들을 기억해주는 Donor Wall 을 완성하고 떠나셨습니다. 재임중에 201112월에 한인공동체가 정식으로 디트로이트 대교구의 본당으로 승격이 되었습니다. 본당이 설립된지 36년만의 일이였습니다. 20127월에는 재정적인 이유때문에 수녀님들이 본원으로 귀원했습니다.

 

20147월 제 11대 박재우 베드로 푸리에 신부님이 부임  하셔서 하느님을 경배하고 살아가는 공동체, 기본에 충실한 교회가 되자는 사목방침을 세우시고 열정적으로 사목활동을 하셨습니다.

부임초에 본당 설립 40주년 행사를 성대히 치루셨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오늘 5번째  매듭을 짓는데 여러분들이 동참하고 계십니다.

박신부님께서는 40주년기념 행사이후 , 체계적으로 성서모임을 주관하시고 28명이나되는 성서모임 지도자를 양성하셨습니다. 주일학교 학생들을 위해서 한달에 두번 한국어 미사를 집전했습니다. 연장자들을 위해서 본당입구에 캐노피도 만들고

성모동산, 김대건동상주변 동산도 마련하고 사제관 주변에도 50그루의 나무도 심으셔서 조경시설하시는등 ,우리 성당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이것을 위해 노력봉사를 해주신 분들도 많습니다. 박신부님은 개방적이셔서 평신도들에게  사순특강, 대림특강을 맡기셔셔 신자들에게 교회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고, 처음으로 자천 성체분배권자 제도를 신설해서  22명에게 5년임기의 임명장을 수여 했습니다.

박신부님은  성유진 성당에서 갖고온 비품중에서 4분의 성인유골을 발견하셔셔 우리본당의 4명의 화가 자매님들이 많은 수고를 해주어 4분 성인들의 초상화를 복원해서 성인들의 유골과 함께 성당로비에 있는 성모상 옆에 모시고 , 우리 신자들이 신앙을 재충전 할수있는  성스러운 기도의 장소로 만들었습니다.

또 사제관에서 새 성전 봉헌식 할때  이웃에서 선물로 들어온 검은 성모상을 발견하시어 지금은 채색을 해서 제대위에 모시고 있습니다. 대교구에서 실시한 함께 하는삶” (CLT) 운동에 적극참여해서 211가구 참석해서 목표액 110%를 달성했습니다.  

현재 임성진 세례자 요한 신부님은 201911312대 본당신부로 부임하셔셔 재임중 이십니다.

그동안 우리본당에서는 디트로이트 대교구출신은 아니지만 신부님 세분, 수녀님 두분, 종신부제 1분을 배출했습니다

여기까지 우리본당의 45년 역사를 뒤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침기도로 이해인수녀님의 시 와 저의 기도를  바치고 끝내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아무 것도 가져온 것이 없고

아무 것도 가져갈 것이 없는

이승의 순례자인 우리가

이기와 탐욕의 노예가 되지 않게 하소서

우리가 갖고 있는 모든 것은

당신께 빌려 받은 것임을

항시 기억하게 하소서

나의 정성과 나의 노력과

나의 시간과 나의 마음을

더 많이 바칠수록

남에게 더욱 빛나는 선물이 됨을

항시 기억하게 하소서**2

 

우리 성당이 영적성장의 보금자리가 되고

신앙성장의 재충전소가  되어

젊은 세대와 새로운 신자들과 기존신자들에게

힘들고, 외롭고, 어려울 때 의지할 수 있는

아늑하고, 따듯한 안식처가 되주소서

생사를 주관하시는 주님, 코로나사태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Notes: *1   è 디트로이트 성당40주년 기도문중에서

        **2 è 이해인수녀님의 < 사계절의 기도> 중에서